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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글] 돈을 밟던 이야기

찍새 제갈선광 2014.02.16 06:00

2월16일(음력 1월17일),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

1992년 10월21일자 마산고등학교 제21회 동창회보에 실었던 글을 옮겨봅니다.


아버지께서 1976년,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으니 지금 내 나이에 돌아가셨네요....

(아래 영정은 아버지의 젊은시절의 사진입니다.)



[글] 돈을 밟던 이야기

돈을 밟던 이야기


내가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동안 꾸려나가던 조그마한 가게 한구석에 동전교환기가 한 대 놓여 있었는데, 한 날 기계를 열고 지폐를 챙기다가 무심코 1불짜리 한 장을 바닥에 떨어뜨렸다.

허리 굽혀 줍기도 귀찮아 우선 손에 쥔 것부터 챙기는데 어느새 웬 어린 깜둥이 한 녀석이 살그머니 곁에 와서는 살짝 그 돈을 발로 밟고 서서는 나에게 “하이~”하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.


속으로 이 엉뚱한 녀석이 벌써 도둑질부터 배우나 싶어 어처구니없어 하는데, 불현듯 삼십여 년 전에 나도 이 깜둥이 녀석처럼 돈을 밟고 서있어야 했던 기억이 소름같이 돋아나 도무지 이 녀석을 밀치고 발바닥 밑에 유린당하고 있는 내 돈을 집어낼 수가 없었다.

결국 ‘내 손에서 떨어져나간 그 돈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게야’라고 속으로 되뇌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.


우리의 기억 속에는 혼자만이 간직할 수밖에 없는 지워버리고 싶은, 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 몇 가지는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.

그런 것들 중에 오늘은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 바로 면전에서 돈을 밟아야했던 부끄러운 애기 하나를 끄집어내야 할까보다.


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장군동(마산) 법원 바로 뒤의 방 여섯 개짜리 집에서 그렁저렁 여유롭게 살았었는데, 별나게도 선구자였던 숙부님 한분이 자유당시절 도의원 출마다 뭐다 하며 몇 번 북새통을 치다보니 우리 집이 거들이 나고 말았다.


중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 어느 날,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웬 낯선 얼굴들만 온 집안에 가득 모여 있었던 것은 내가 수업하는 동안 낙선한 숙부님의 빚잔치를 하느라 그 정든 집을 내어주고 구마산으로 셋방살이로 떠났기 때문이었다.


깨어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물어물어 그나마 우리 집이라 찾아간 곳이 오동동 대원약국(먼저 간 이동호 동문) 바로 뒷집이었다.


내가 넋두리가 너무 심했나...?

어쨌든 그때부터 구마산이 아지트가 되어 죽자 살자 붙어 다니던 친구 몇 놈 있었는데, 외과병원 아들이랑, 그 아래 한의원집 손자하며, 시민극장(없어진지 오래되었음) 아래 책방 아들, 그리고 산파집 남동생……. 그때를 돌이켜 보면 나쁜 짓도 더러 했었지.


어려운 살림에 잡비가 있을 수 없는 형편이라 매일 이놈들과 어울리다 보니 가난한 내 호주머니는 영원히 가난할 수밖에 없었고, 눈치 긁어가며 녀석들 신세지기가 어디 한두 번뿐이었겠는가.


이날도 나는 학교에서 필요한 걸 사야한다며 아버지께 말씀 드리자(죄송합니다 아버지, 그 돈은 친구와 노는 데 탕진한 것 같습니다) 양복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시다가 당신도 모르게 그때 돈으로 오백 환짜리 한 장을 방바닥에 흘리셨다.


그런데 글쎄, 요게 하필이면 반으로 딱 접혀서 내 발 앞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!

갈등도 잠시, 하늘이 도우사 용돈에 굶주린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가보다 여기며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아름다운 오백 환을 발바닥으로 꽈악 밟고는 돌같이 서있었다. 아버지께서 그 자리를 먼저 뜨실 때까지 말이다.


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셨는지 못 알아차리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사무실로 출근을 하셨고, 나는 기막힌 불로소득에 회심의 미소를 감출길이 없었고, 그리고 잘 썼지.


지금 내 마음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 깜둥이 녀석이 1불짜리를 밟고선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는데,

오백 환을 밟고선 것을 아버지께서 어찌 모르셨을 것이냐 라는 것이다. 모른 채 눈감아주신 고마움보다도, 저놈이 왜 이러나 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안으로 지셨으리라 생각하면 영판 내가 발가벗고 한길에 나선 꼴이다.


내 나이 벌써 귀밑머리에 흰 꽃이 필 정도니까 다시 아버지를 뵐 날도 그리 먼 것 같지 않아 갈수록 걱정이 태산이다.


아버지, 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.

그때 그 돈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양심을 삼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으니 말입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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